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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리뷰

[책리뷰] 기계같은 인간과 혹독한 현실의 드라마. 아몬드 - 손원평

저자 손원평 창비 2017.03.31

 

감정이 메마른 '로봇형 캐릭터'가 사랑받고 있다. 인기 드라마 비밀의 숲에서 주인공 황시목은 뇌를 다쳐서 슬픔, 분노 같은 감정을 깨닫지 못한다. 이번 생은 처음이라에서도 마찬가지다. 남세희는 남보다 공감능력이 떨어지고, 지나치게 이성적이다. 아몬드 책에서도 그런 캐릭터가 나온다. 아몬드는 선천적으로 감정 불능증을 앓는 윤재가 주인공이다.

 

감정을 모르는 탓에 윤재는 엄마와 일러주는 자상한 조언만 지키며 살아왔다. 다른 사람들이 웃으면 같이 웃거나 예의 차리는 인사 같은 말들. 하지만 윤재는 가족들이 일러준 인사의 의미를 모른다. 세계 10대 푸드로 선정 된 아몬드를 꾸준히 먹어도, 태생적 운명이 나아지지 않는다. 결국 친구들 사이에서 윤재는 이상한 아이라고 낙인이 찍히고야 만다. 친구 없는 윤재에게 남은 건 할머니와 엄마 뿐인데 열 여섯번 째 생일날. 크리스마스 이브에 사건이 일어나고야 만다. 묻지마 범죄로 가족들을 잃은 것이다.

 

윤재의 할머니는 피를 흘리며 돌아가셨고 어머니는 병상에 누워 아무것도 못 하는 식물인간 상태가 되었다. 하지만 감정을 모르는 윤재는 '슬픔'이나 '그리움'도 없다. 왜 그런 비극이 일어났는지, 이유를 모를 뿐이다. 어머니와 좋은 친구였던 베이커리 사장님이 윤재를 돌봐주긴 해도 윤재는 혼자다. 그런 윤재에게 자극 받은 친구 곤이 나타난다. 곤과 윤재는 원수지간처럼 지내지만(곤의 일방적인 감정) 결국 둘도 없는 친구가 된다. 곤과 우정을 쌓으면서, 도라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윤재는, 가슴 속에 무언가가 꿈틀거리는 것을 느낀다. 

 

<아몬드>에서는 감정과 사회성이 없는 윤재가 주인공이지만 공감할 대목도 많았다. 막내로 태어나서 어수룩한 성격인 나는 윤재처럼, 보이지 않는 본심을 잘 못 읽을 때가 많았다. 모든 사람들이 나처럼 솔직한 줄 알았고, 거짓말 할 의도가 없어 보였다. 인간관계 속 아이러니를 파악하게 된 건 이십 몇 년이란 세월이 흐른 후였다. 

 

그 이면의 뜻이 숨어 있다는 걸 나는 잘 알지 못했다. 나는 세상을 곧이곧대로만 받아들였다.

 

본문 41p (전자책 기준)

 

친해진다는 게 구체적으로 어떤 거죠?

- 예를 들어, 이렇게 너와 내가 마주 앉아 얘기하는 것. 같이 무언가를 먹기도 하고 생각을 나누는 것. 특별히 돈이 오가지 않았는데도 서로를 위해 시간을 쓰는 것. 이런 게 친한 거란다.

- 몰랐어요. 제가 아저씨와 친한 줄.

 

본문 174p (전자책 기준)

 

그래서 감정을 못 느끼는 윤재의 고민과 궁금증이 의외로 내 어릴 적 질문과 꽤 비슷했다. 예를 들어 어린 시절, 나는 a와 b, 둘 다 잘 지내는데 정작 a와 b 둘은 서로 으르렁댔고 그런 사이를 잘 이해하지 못 했다. 세상에 대해 궁금한 점이 많았다. 나 빼고 다른 아이들은 아이러니 속에서 잘 어우러지는 거 같은데 나만 동떨어진 느낌이었다. 그래서 어른들에게 그것을 물어도 정확히 대답해주는 이도 없었다. 이제와서 돌이켜보면 그들도 잘 몰랐던 거 같다. 어른이라고 다 아는 것도 아니고. 친구들도 잘 모르지만 그냥, 겁없이 세상에 뛰어든 거 같다. 그러니깐 우리에게 모두 <윤재>같은 어린시절이 있던 것이다. 그렇다고 현재 세상살이의 만렙이 된 건 아니지만, 그때보단 스킬이 늘었고 때가 탔다.

 

윤재는 곤이와 만나 특별한 우정을 쌓아가고 도라와 친구 이상의 감정을 만들어가면서 점차 성장하게 된다. 그리고 엄마의 흔적같은 책방을 둘러보면서 자신도 책을 쓸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소망한다. 윤재의 성장을 지켜보면서 선천적인 요소보다 후천적인 노력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나는 깨닫는다. 그런 면에서 <아몬드>는 그래도 현실적이면서도 꽤나 희망적인 결말을 그려내지 않았나 싶다. 내가 이십 몇년간의 세월 속에서 터득한 아이러니처럼 알고자 하는 사람에게 막힌 길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