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적부터 까마귀는 길흉의 존재였다. 까악 까악 특이한 울음 소리며 재처럼 시꺼먼 색깔. 존재감이 확 튀는 까마귀는 인간들 눈에는 다른 동물들과 확연히 달라보였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차별받는 대상이었다. 하지만 알고 보면 지능이 높고 사람들과 의사소통도 쉽게 할 수 있는 새라는 걸, 많은 날이 지난 오늘날에나 알게 된 진실이다. 게다가 행운의 상징인 ‘제비’ 역시 까마귀과 새다. 까마귀 전설은 우리가 만들어낸 편견일 뿐이다.
아무튼 이런 얘깃거리에 나는 평소 까마귀를 좋아하기도 하고 관심있어라 하는 편이었다. 그러니까 서점에서 발견한 동화책 ‘까마귀 소년’이 내 눈길을 끄는 것도 우연은 아니다.
까마귀 소년은 강렬한 제목처럼 그림 역시 강렬하다. 알록달록하게 꾸며진 다른 동화들과 달리 투박하게 칠해진 검은색 하며 심슨에서나 보았던 노란 피부 역시, 낯선 동화처럼만 느껴진다. 책을 넘겨보면 무지개빛 같은 건 볼 수 없고 푸른색이나 초록 계열이 확 눈에 띄는 독특한 동화책, 대체 무슨 얘기일까, 낯설어하며 읽었는데 우리 사회에서 접할 수 있는 줄거리였다.
학교 아이들 중 단연 특이한 땅꼬마 소년은, 친구들 사이에서도 따돌림 당하며 선생님 역시 무서워한다. 소년은 교정에서 어울리지 못하고 밖에 나가서 벌레들을 만지거나 하는 등 혼자 놀기만 한다. 시간은 6년이 흘러 졸업반이 되었을 때 이소배 선생님이 새로 오시는데, 이소배 선생님은 다른 선생님들과 다르게 자연 친화적인 수업을 진행한다. 뒷산에 데리고 나가서 두 발로 세상을 맛보게 하는 것이었다. 땅꼬마는 이소배 선생님의 수업에선 열등생이 아닌 우등생이 되었으며 선생님과도 둘도없는 친구가 되었다. 학예회 무대에선 땅꼬마가 까마귀 소리를 흉내내며 무대를 꾸몄다. 소년의 까마귀 소리에 모두들 울음을 터뜨리며 6년간의 따돌림을 반성하고 뉘우친다. 졸업 후, 땅꼬마를 마주친 친구들은 그 아이를 ‘까마둥이’라고 부르며 친근하게 대했고, 까마둥이가 사라진 먼 산자락에는 행복한 까마귀 소리가 들려온다.
일단 자폐기질(개인적인 해석입니다)이 있어서 친구들에게 따돌림 당하는 아이를 까마귀에 비유한 것이 독특했다. 일본 사람들 역시 까마귀는 길흉의 상징으로 여기며 까마귀를 홀대했었더란다. 그런데 실제로 학창시절을 돌이켜보면 몸이 아프거나 장애가 있어 말하기를 꺼려하고 피했던 아이들이 있었다.
어릴 당시 그 아이가 독특한 이유를 잘 알지 못했고, 선생님들 역시 설명해주지 않아 친해지기도 전에 결국 멀어진 경험이 있다. 씁쓸한 현실이다. 커서도 그 아이를 알아주지 못해 미안했던 마음이 종종 있다. 이소베같은 선생님이 있었다면 그들도 사람들 틈에 잘 섞이는 친구가 되지 않았을까?
자폐를 가졌지만 그림을 잘 그린다거나 장애를 가졌는데도 운동을 하는 등 특별한 아이들이 분명 우리 주변에 있다. 물론 그렇게 재능이 없더라도, 그들도 잘하는 게 하나씩 있기 마련이다. 독특할 뿐이지, 우리와 분명 같은 존재이다.
까마귀 소년을 읽으며 어릴 적 우리가 멀리했던, 심장병을 가진 친구를 떠올렸다. 입술이 파랗고 얼굴이 하얗고 아이들에게 살기 어린 눈빛을 내보이던 조그마한 아이. 이제 그 눈빛의 진실을 알 수 있다. 겁을 주려고 째려보던 게 아니라 세상과 투쟁하던, 아픈 눈빛이라는 걸 깨닫는다. 과거를 돌릴 수 없으니 나라도 이소베 같은 선생님이 되어주기로 결심 해본다. 분명 평탄치 않고 쉽지 않은 길이지만, 어른이 되었으니 다시 실수하는 일이 없도록 하는게 최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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