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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리뷰

창작과 비평 2024년 봄호 서평단 리뷰

 

 

 

봄과 함께 온 계간지.  받을 때 정말 손 안에 들어온 봄 같았다. 시들을 읽으면서 싱숭생숭하고 간질간질했다. 드디어 2024년의 시작이구나. 올해 문학의 시작을 창비에 실린 시와 함께 하는구나 깨닫는다.

 

고명재 시인의 하와이안 피자는 읽으면서 웃음이 나온다. 하와이안 피자를 무척이나 좋아하는 편인데, 싫어하는 친구들도 많이 보았다. 그들과 함께 있으면 하와이안 피자를 뺀 나머지를 고른다. 적당한 피자, 포테이토나 페페로니 같은. 시 속에서 하와이안 피자는 [이것은 범죄다 이것은 멀쩡한 이태리 사람을 순식간에 울부짖게 만들 수 있다] 라고 표현한다. 그렇게까지 범죄인가? 싶다면 [고구마피자 불고기피자 존중해줄 수 있다 그러나 김치피자부터는 갑갑해진다] 김치피자를 비유로 드는 것이다. 가끔 김치전을 코리안식 피자라고 표현한다지만 두 개는 확실히 다르다. 처음으로 하와이안 피자가 멀리 느껴지는, 재밌는 시지만 마지막으론 하와이 출신이지만 부모를 모르는 엄마의 이야기로 넘어간다. 자연스러운 흐름에서 음료 없이 하와이안 피자를 먹는 것처럼 속이 아프다.

 

김이듬 시인의 블랙 아이스는 입양된 제니스가 부모를 찾으러 간다. 시 중 배경은 눈이 오는 차디찬 겨울이다. [사람 마음만큼 잘 변하는 게 있을까 희고 부드러운 눈발 같았다가 녹으면서 성질이 변한다] 그녀가 엄마를 찾으러 가는 길목도 [실제로 가긴 간다 미끄럽고 거무스레한 길로 태어나려면 거쳐야 하는 통로 같다] 라고 표현된다. 읽으면서 그의 운명에 마음 졸이고, 속이 상하는 화자에 이입하며 읽었다.

 

임유영 시인의 연해주는 케이크를 만드는 재료와 레시피로 연해주를 표현한다. 불타는 이구아나 모양의 덩어리라는 게 마치 따끈따끈한 쿠키 조각 같고, 뜨거워 보인다. 어릴 적에 학교에서 선생님들이 3과 5를 나란히 칠판에 쓰고 작대기로 긋는 식으로 그리면 한반도가 나왔다. 좋은 그림에는 호랑이 모양으로 그려놓기도 한다. 그러면 손 안에 땅이 있는 기분이 든다. 연해주를 이구아나 모양으로, 그것도 불타는 이구아나 모양으로 바라보는 신의 마음은 어떨가. 

 

시인의 상상이 재미난 시를 읽으면 그전과 다른 세계에서 다른 시각으로 살아가는 느낌을 받는 착각에 빠진다.

 

장옥관 시인의 의자는 의자의 슬픔을 그려낸다. 의자에 관한 시는 많고, 시인들이 의자를 사랑하는 일도 많아서 의자 시는 숱하게 읽어보았지만, 장옥관 시인만의 슬픈 정서가 살아난다. [의자를 개처럼 데리고 다니는 사람이 있을까] [후배위로 올라타는 똥개도 보았다] [곧 쓰러질 듯 삐걱대는 저 의자에] 의자를 함부로 대하는 생명들 속에서도 의자는 의자로 꼿꼿이 있는 담대함이 느껴지고 문득 시를 읽다가 나는 의자를 어떻게 대해왔는지 반성하면서 내 엉덩이 밑에 깔린 의자를 바라보게 되는 시간도 가진다. 

 

따끈따끈한 시들을 읽으면서 맞이하는 봄은 전년만큼 춥지 않다. 여러모로 문학과 어울리는 계절이다. 그 가운데에는 창비가 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