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무더운 여름날 더위를 없애려고 공포 영화를 보거나 소설을 읽기도 한다. 그러면 정말로 추위가 느껴지면서 그 영화가 보통보다 매력적이다. 공포와 연관성이 많은 스릴러 장르도 마찬가지일까? 소신 발언이지만 나는 스릴러는 겨울과 가장 어울리는 장르라고 생각한다. 소름 끼치는 살인사건과 섬뜩한 핏빛 그림자. 오싹오싹한 스토리. <콜드 키스>를 읽게 된 계절은 겨울이었다. 읽는 내내 추운 기분을 느끼는 이 소설은, 손 시린 겨울과 싸한 공포를 잘 버무렸다.
새하얀 눈밭에 시뻘건 피가 뿌려지는 미장센은 영화에서 단골 소재가 되었다. 내가 처음 그 장면을 접한 건 영화 <파고>였는데 파고를 본 이후부터, 새하얀 눈만 보면 뱀파이어처럼 피 생각이 그렇게 난다. <콜드키스> 역시 마찬가지다. 거센 눈발이 내리는 계절에 일어난 살인사건. 이야기는 오도가도 못하는 냉혹한 겨울 속에, 한 모텔에서 일어난다. 주인공은 네이트와 사라. 그들은 보통 평범한 삶을 살던 사람들이 아니다. 새로운 인생을 개처하고자 하는, 의욕 넘치는 젊은이들이다. 그런데 하필이면 처음 보는, 알고 있는 것이라곤 이름밖에 모르는 동행자, 그가 자신들의 차 안에서 갑자기 쓰러지게 된다. 살인을 피하고자 그를 처치하려는데 그가 가진 큰 돈을 발견한다. 네이트와 약혼녀는 그들의 신념대로 행동하게 되고, 그때부터 무서운 사건에 휘몰리게 된다.
어찌 보면 간단한 스토리일 수 있다. (이 점이 조금 아쉽다) 누구나 이러한 상상을 해보니까. 그런데도 페이지를 넘길수록 압박해오는 이 긴장감은 무엇일까? <콜드 키스>속 이야기는 캐릭터들을 점점 더 극한의 상황으로 몰아간다. 그리고 독자에게 ‘나 역시 그런 선택을 하게 될까?’ 라는 고민을 하게 만든다. 그래서 한 번 보아도 마음에 남는, 깊이 있는 스릴러이다.
겨울날 여행을 떠났는데, 단순히 만난 히치하이커가 내 앞에서 죽게 되고, 그 사람의 돈만 남았다면 나는 과연 어떤 선택을 할까? 그런데, 그 죽은 줄 알았던 사람이 죽은 게 아니라 살았다면? 상황은 점점 꼬여가고 책을 읽는 나 역시 숨이 막혀서 번번이 읽기를 중단하기도 했었다.
제법 심각한 상황 속에서 사라와 네이트는 다투고 싸울 수밖에 없다. 임신한 사라는 보다 감성적일 수밖에 없고, 한 가정의 책임자가 된 네이트는 이성적으로밖에 상황을 정리할 수 없다. 이 와중에 계속해서 눈이 내리고 모텔에 고립될 수밖에 없는 섬뜩한 공포. 한참 전에 읽은 <콜드 키스>가 여전히 뇌리에 남는 이유이다. 덜 유명한 스릴러를 읽고 싶은데, 영화를 보는 듯한 특별한 느낌을 원한다면 지금 당장 <콜드 키스>를 읽도록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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