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리뷰

[책리뷰] 죽을 때까지 두고두고 읽고 싶은 인생책. 진주 귀고리 소녀 - 트레이시 슈발리에

저자 트레이시 슈발리에 양선아 옮김 강 2003년 8월 25일

 

 

 

사람들 각자 저마다 인생의 책 한 권씩은 있을 것이다. 몇 살이 되든, 죽을 때까지 품에 안고 몇 번이고 읽고 싶은 인생 책. 나에게도 있다. 그것은 바로 트레이시 슈발리에의 진주 귀고리 소녀’ 너무 유명한 그림이 표지에 놓인 책. 나는 이 책을 책을 잘 모르던 시절에 읽었다. 이제 막 문화생활에 젖어들어 끊임없이 책을 읽고 싶단 열망에 어렴풋 젖어있던 그 시절에 가볍게 읽었던 책이었고, 짜임새 있는 세계관과 정교한 문체에 사랑을 느꼈다. 이 책은 나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그 영향은, 무슨 글이든, 이야기를 깊이있게 담고 싶다는 소망까지 번졌다.

 

<진주 귀고리 소녀>는 트레이시 슈발리에가 1999년에 쓴 책으로, 네덜란드의 화가 요하네스 페르메이르의 작품을 소재로 했다. 실제 이야기라고 해도 믿길 만큼 정교한 픽션의 소설이다. 처음에 익숙한 표지 그림에 끌린 책이지만 이젠 요하네스 작품만 마주하더라도 소설 이야기가 곧장 떠오른다.

 

시대 배경은 1660~70년대 네덜란드로 낯선 감이 없지않다. 그렇지만 단순히 배경과 소재에 혹한 게 아니라 이야기의 흡입력과 그림 그리는 묘사에 심취해버렸다. 정말 그 시절 사람들은 이렇게 살았을 거 같다.

 

나도 한때 예술가를 꿈꿨고 그림을 배웠었다. 실제로, 새하얀 캔버스 액자에 붓질하는 느낌을 알고, 눈 앞에 모델을 나만의 시각으로 남길 줄도 안다. 누군가의 모델이 된 적도 있다. 살면서 평생 느끼지 못할 감정들이었다. 어색하지만 경이롭다거나, 부끄럽지만 행복하다거나 그런 느낌들. 그때 깨달았던 생생한 느낌이, ‘진주 귀고리 소녀를 보면서 나에게 와닿았다. 공감하면서 읽었다. 번역도 잘 되어 있어서, 굉장한 묘사력과 문장력에 감탄을 한다.

 

물론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건 관계이다. 열여섯 살 그리트는 가족의 생계를 위해서 베르메르 집 하녀가 된다. 그리고 자신의 주인님 베르메르와 엮이게 되고 하녀와 주인의 평범한 관계에서 벗어난다. 입체적으로 바뀌는 두 사람의 관계, 그리고 그것을 감지하면서도 둔한 신경질적인 베르메르의 아내와 현실적인 끈으로 이어진 정육점 집 아들 피터. 네 사람의 엇갈린 운명까지 그려낸다. 어쩌면 뻔한 인물 관계를 시대적 배경과 적절하게 버무려서 그닥 클리셰로 느껴지지도 않는다. 게다가 은밀하게 드러나는 인물들의 교감을 잘 넣어서 독자가 숨죽인 채 책장을 넘기도록 만든다. 심리 묘사가 탁월하게 드러나서 누구든지 그리트의 마음으로 결말까지 단숨에 읽을 것이다.

 

그렇지만 내가 가장 인상 깊게 읽은 것은 베르메르가 그리트를 그릴 때였다. 두 사람 사이에 전해지는 팽팽한 긴장감과 야릇한 설렘. 그런 분위기도 맞지만 어떤 부분에서 무슨 색을 쓰는지, 어째서 이런 식으로 그림을 표현하는지, 깊이 있는 설명이었다. 베르메르와 그리트는 그림을 통하여 선생과 제자가 되면서도 서로에게 자신을 발견하면서 자극을 느끼게 된다. 악동 같은 아이들과 식사를 하고, 고기 심부름을 다녀오는 지루하고도 평범한 일상 속에서 그리트와 베르메르는 단 한 가지의 판타지에 기댄다. 화실에서 이루어지는 비밀리의 만남, 수업이다. 책을 처음 읽을 때나 결말을 알게 됐을 때나, 나는 참으로 이 책이 섹시한 책이라고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