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저드베이커리를 통해 구병모 작가를 알게 됐다. '구병모'란 필명도 심상치 않았는데, '위저드 베이커리' 역시 신선하고 산뜻한 스토리라서 첫 작품을 보자마자, 내 머릿 속 한 구석에 강렬하게 각인됐다. 구병모 작가는 현실적인 동화를 잘 쓰는 사람이라는 것, 그리고 구병모 작가의 스토리는 재밌다는 것. 이렇게 두 가지.
위저드 베이커리는 새엄마 밑에서 눈치를 보며 사는 말더듬이 소년이 누명을 쓰고 집 앞 베이커리로 도망치면서 본격적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이렇게 줄거리만 보았을 때 여느 소설과 다름없어 보이지만, 이야기에 특별한 소스가 숨겨져 있는데 그것은 바로 '위저드 베이커리'는 사실 마법사가 운영하는 빵집이라는 비밀이다. 아파트 단지에 있는, 24시간 베이커리 '위저드 베이커리'는 말더듬이 소년이 눈칫밥 먹기 싫어서 한 번씩 들러 빵을 사가는 곳이다. 하지만 사실 소년은 빵을 지긋지긋하게 여기고 있으며, 기한 지난 빵과 같은 푸석한 인생을 살고 있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인생의 길을 잃었을 때 도망가는 곳이 위저드 베이커리다.
원래 빵순이인 나는, 글을 읽는 동안 허기가 져서(제조과정이나 빵을 묘사하는 부분이 많기 때문에) 소설을 읽는 동안 무언가를 먹어댔다. 무언갈 먹지 않아도 배가 풍족한 기분이 들기도 했는데 그것은 분명 세세한 배경묘사와 향긋한 문장때문이었으리라. 맛있는 표현과 쫄깃한 스토리에 어른인데도 마음을 빼앗겼다. 애들이 좋아할 법한 이야기지만 현실적이어서 분명 어른들에게 통하는 씬도 많고 암울한 대사도 많다. 가장 마음 쓰이는 주인공의 상처 또한, 힘들었던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해주며 나에게도 '위저드 베이커리'가 있었을지 고민하게 만든다. 결국 어른이 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말더듬이 소년처럼 힘든 가정에 놓인 아이들을, 따끈따끈한 빵처럼 품어주는 것이리라.
소년과 나의 학창 시절은 조금, 닮아있다. 말더듬이 소년이 소통을 힘들어하는 것처럼 나는 친구가 없었다. 게다가 용기가 없고 수줍은 소녀라 발표를 못하고 국어 시간에 글 읽기도 피했다. 그 시절 부모도 나에게 가까운 존재가 아니었다. 막내였지만 맞벌이 부부 밑에 있었기에 사랑받고 자란 막내도 아니었고 부모는 항상 서로를 보고 삿대질했다. 가끔씩 속상한 일이 생기면 나는 가족에게 털어놓지도 못하고 옷장에 박혀 울기도 했다. 소년에겐 위저드베이커리가 있었고, 내겐 옷장이 있었다.
그 시절을 없던 일처럼 지울 수도 없고, 이제와서 눈 가리며 좋게 포장할 수도 없다. 단지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힘든 아이들을 보살피는 것이다. 위저드 베이커리의 맘씨 좋은 '마법사'처럼. 아이들에게 긴장을 한동안 누그러뜨리는 일밖에 없다.
위저드 베이커리의 결말은 두 가지다. 두 가지 모두 이입하여 읽었지만, 낯설지 않은 기분이 든다. 머릿속으로 여러번 되뇌였던 상상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마음에 드는 결말은 하나가 있다. 자신의 가치관에 따라서, 자신의 학창시절에 따라서 마음에 가는 결말은 사람마다 다를 테지만 신선한 결말임은 틀림없다. 독자가 결말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주다니, 이 얼마나 아량 넓은 작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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