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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리뷰

[책리뷰] 세대를 아우르는 대단한 소설책,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 - J. M. 데 바스콘셀로스

작가 J..M 데 바스콘셀로스 김효진 그림. 박동원 역. 동녘 2010.04.15

 

 

이실직고 하자면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를 다 커서 봤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이 책을 나는 성인이 돼서야 읽어보았다. 그것도 고작 4년 전쯤에 말이다. 모두 초등생 때 접하는 유명한 책을 나는 생소한 이유로 읽게 되었다. 그것은 아이유가 만들어 낸 앨범 속 논란. <제제>,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 캐릭터였다. 당시엔 사람들은 핏대세우며 갑론을박했고 커다란 싸움속에서 나는 길을 잃은 채 이 쪽 저 쪽 헤맸었다. 내가 길을 헤맨 이유는 딱 하나,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를 읽어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이유를 옹호할 수도 없었고 아이유를 탓할 수도 없었는데 그런 와중에도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 책이 눈에 띄었고 결국 구매를 결심했다.

 

그래서인지 초반에, 책에 흥미가 없었다. 그때만 하더라도 인스턴트 독서를 했었는데 나는 재미를 추구했었다.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는 내가 읽고 싶은 책이 아니라, 단지 한때 논란이 된, 그 중심의 책이었고 그래서 단지 읽어야 한다는 강박 안에서 무거운 돌을 만지듯이 무표정하게, 쳐다보고 만지고, 읽었다. 그리고 관뒀었다. 결국 아무런 결론도 내리지 못하고 우물쭈물 거리다가, 그 일들을 모두 잊은 나중이 돼서야, ‘2019년 현재다시 읽기 시작했는데 그때 쉽게 지나쳐버렸던 문장이나 장면들을 보면서 눈물을 펑펑 쏟아냈고 결국 나는 엉엉 울면서 책을 읽었다. 그리고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가 엄청난 책임을 느지막히 깨달았다.

 

제제는 굉장한 재능을 가진 아이다. 다섯 살이란 어린 나이에 지능도 생각도 뛰어나서 일찍 철이 들었다. 다른 아이들이었다면 그냥 저질렀을 법한 악동의 짓을 제제는 내 안에 악마가 있어. 난 나쁜 놈이야하며 죄책감을 갖는다. 분명 철이 일찍 들은 것이다. 제제가 철이 든 이유 중 하나는 형제들이 많은 가정의 분위기나 가난 때문도 있는데, 분명 아동학대와도 연결된다. 제제는 자신이 왜 맞는지도 모르면서 벌을 받고, 발바닥에 유리가 박혔는데도 자신이 혼이 날까 봐 퉁퉁 부은 그 발을 질질 끌고 등교를 하기도 한다.

 

사랑받기도 모자른 나이에 혼이 나고 벌 받는 게 당연하게 된 제제는 남보다 일찍 철들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어쩔 수 없이 어려서, 나이의 동심은 잃지 않았고, 그렇기에 짓궂은 장난을 친다. 그때마다 어른들은 제제와 놀아준다거나 안타깝게 여기긴커녕 귀찮아하며 악마라며 소리치고 제제 자체를 부정한다.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누구든 어릴 때 장난치던 기억 하나씩 있을 것이다. 그럴 때마다 나와 가까운 가족이 내게 혼을 내면서 편견을 씌운다면 아무래도 상처받았을 것이다. 제제에게는 이 모든 것이 일상일 뿐이지만.

 

아주 단순하게 생각하면 제제의 장난은 불편한 행동이 맞지만, 제제가 왜 그렇게 될 수 밖에 없었는지, 그렇게 제제란 아이의 마음을 짚어서 맥락을 깨닫는다면 그들은 자신들의 짧은 생각을 반성해야 한다. 가족들 사이에서 외로웠던 제제는 나무에게 마음의 친구를 상상하며 행복해했다. 제제에게 밍기뉴는, 혹독한 현실 안에서의 유일한 숨통이었을 것이다. 제제는 여느 아이들이 태어났으니 사랑받는 것처럼, 사랑스러운 어린아이일 뿐이다. 그렇다면 이제와서 (지난 이야기를 끄집어내는 것이 너무 뒷북이지만) 아이유 제제 논란에 숟가락을 얹어보자면, 나는 가사와 앨범 커버가 왜 그렇게 논란이 됐는지 '이해'하는 축이고, 그녀의 해석이 내 사견과 멀리 떨어져 있다고 본다. 밍기뉴는 제제에게 어떠한 편견도 선입견도 없으며 사랑하는 존재이다. 게다가 제제는 우리가 눈 돌리면 언제든 볼 수 있는 어린아이이자 사회적 약자다. 이야기 배경이 '판타지'가 아닌 우리가 사는 현실 그 자체이기 때문에 너무도 분별없고 자유로운 해석을 하기엔 불편한 독자가 많을 것이다. 나 포함이고. 물론 예술의 해석을 가두고 진두지휘하는 것이 해답이 아니니까 리뷰 안에 단순히 내 생각을 정리하기에만 결론에 이르렀다.

 

'상대는 나를 보는 거울' 이라는 말이 있다. 그 상대에게서 자신을 본다는 말이다. 나에게도 어린 시절이 있지 않았던가? 만일 가까운 꼬마 아이가 짓꿎은 장난을 친다면 혀를 끌끌 거리며 악마취급을 할 게 아니라, 자신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즐거워 해야겠다. 오히려 그 아이가 동심과 단절된 채 꽉 막혀버린 내 마음을 열게 하러 지상에 온 신이 아닌가 하는, 열린 마인드도 필요하다. 그렇게 이 이야기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내게도 많은 깨달음을 주었다. 동심이 있을 때 이 책을 읽진 않았지만,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는 잊혀진 동심을 일깨워줄 뿐만 아니고, 어른이 된 현재의 내 시야를 넓게 트이게 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