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나나만의 독특하고 음산한 이야기. <하드보일드 하드 럭>
죽음이란 주제가 한데 묶인 중편소설. 나는 이 책을 통해 요시모토 바나나의 글을 처음 접했다. 워낙 유명한 작가의, 유명한 책들 중에서 하드보일드 하드럭이 끌렸던 이유는 문장이었다. 요시모토 바나나의 느낌 충만하고 심플한 문장이 마음에 와닿았고(그 문장이 어떤 것이었는지 현재 생각나진 않지만 내가 워낙 독특하고 개성 넘치는 문장을 좋아한다), 비일상적이고 신묘한 스토리가 재미와 슬픔을 안겨 주었다.
첫 번째 단편 하드보일드는 시작부터 심상치 않은 기운을 준다. 애인과 헤어진 후, 홀로 여행을 떠난 주인공이 사당에서 달걀같이 작고 까만 돌을 본다. 촉으로, 단박에 특이한 기운을 느낀 그녀는 그곳을 도망치듯 서둘러 나온다. 호텔에 도착하기 전 굶주린 배를 채우려 우동 집에 들렸고, 그곳에서 주머니 속에 까만 돌이 있음을 알아차린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기묘한 분위기에 까만 돌을 내버리고 호텔에 간 그녀는, 호텔 주인에게 우연 찮게 우동집에서 불이 났다는 걸 듣게 된다. 섬뜩한 그 날은 죽은 애인의 기일이었다.
“이 세상에는 알 수 없는 뭔가가 모여 있는 장소가 반드시 존재하고, 보잘것없는 개인은 그런 곳에 될수록 관여하지 않는 편이 좋다.”
-하드보일드 중-
두 번째 단편 하드럭은 뇌출혈로 식물인간이 된 언니를 안락사로 떠나보내는데, 언니의 약혼자 동생과 만나게 되어 커져가는 마음을, 복잡하고도 심도 있게 그려낸다. 자신이 행복한 기분을 느끼고 평화로움에 휩싸일 때면 이미 죽어버린 언니에게 미안함을 느낀다. 그리고 혼자 남은 자신의 존재감을 부정하면서도 언니에 대한 애틋함을 지우지 못하는 주인공의 감정선을 따라간다.
“사카이 씨는 어느 쪽이죠?”
“눈앞에 있는 다가온 것만 열심히 생각하는 타입.”
그는 말했다.
나는 비로소, 진심으로 웃었다.
웃고 있으려니, 모든 것을 잊을 수 있었다.
-하드럭 중-
제목대로 특이하면서도 기이한 이야기만 담겨있다. 그런데도 한 페이지 넘길수록 독자를 확 끌어당기는 힘이 있다. 일상과 먼 얘기지만 이상하게도 공감이 되고 마음에 와닿는 기분은 요시모토 바나나만의 매력일지 모른다. 죽음이란 섬뜩하면서도 무서운 이야기를, 주인공과 가까운 사람 이야기로 엮어서, 잔잔하고 간단한 문장을 통해 깊은 사고를 하게 만든다. 그게 굉장한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나역시 누군가 먼저 나를 떠나고 남겨진 사람이 되었다면 이런 일상을 살아가고 있지 않을까? 그 세계는 평범과 조금 다른 세계라서. 보통의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들에게 이 책은 좀더 깊숙한 여운을 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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