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막례. 그녀를 알게 된 경로는 내가 자주 접하는 커뮤니티였다. '어떤 할머니가 화장품 리뷰하는 영상 있는데 완전 웃겨' '진짜? 진짜?' 입소문처럼 퍼진 그녀의 유튜브 영상. 나는 박막례 할머니의 초기 편(팬)이다. 욕쟁이 할머니처럼 구수한 입담에 웃고, 손녀와 알콩달콩 노는 모습에 또 웃고, 참신한 컨텐츠에 깔깔 거렸다. 그녀의 유튜브는 답답한 내 인생의 활력소였다. 그녀의 영상을 보면 숨이 트일 것처럼 웃겼다.
그런데, 박막례 할머니의 책이 나왔다고라? 당연히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구매해야지. 그렇게 해서 사게 된 책, <박막례 이대로 죽을 순 없다>였다. 그녀의 일대기, 긴 인생이 짤막하게 실려 있다. 막내라서 이름도 막례, 여자라서 공부도 못했고 그저 살림만 배웠던 퍽퍽한 삶. 영상에서 접할 때보다 더 진득하게 쓰여있다. 유튜브 영상에서만 접했을 땐 씩씩하고 유머러스하고 친해지고 싶은 셀럽 중 한명이었는데 책으로 접하니 새삼 느낌이 또 다르다. 그 시절 막례 할머니를 찾아가 위로해주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그 시절 할머니들은 거의 그렇지 않았을까. 하지만 시대가 달라졌다고 여자들의 처신이 많이 달라진 건 아니다. 그래서, 그녀의 치마폭에 안겨서 서러움을 말하고 싶고 그녀의 이야기를 더 듣고, 공감해주고 싶다. 나역시 막례 할머니 시대에 태어났다면 그녀의 아픔을 벗어날 수 없을 테니깐. 여자로서의 공감, 그리고 더 알고 싶은 백그라운드. 그런 갈증을 이 책이 조금이나마 풀어준 게 아닌가 싶다.
막례 할머니를 좋아하면 자연스럽게 좋아하게 되는 인물이 한 명 더 있는데, 그것은 바로 유라pd다. 박막례 할머니가 성공한 데에 커다란 공을 세운 사람, 손녀 유라씨. 나역시 그녀의 세련된 편집 기법에 홀린듯이 영상을 봤었다. 할머니가 재밌는 성격인건 알지만, 편집이 평범하거나 컨텐츠가 뻔한 것 (할머니 효도 영상, 할머니와 데이트, 어버이날 할머니 리액션) 이었더라면 아마 박막례 할머니를 이마만큼 사랑하진 못했을 거다. 그러니깐 그녀의 공이 크다. 유라 pd의 센스가 책에서도 느껴진다.
할머니가 유튜브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의외로 평범하다. "치매" 때문이었다. 유라pd는 다니던 회사까지 관두고 막례 할머니와 여행을 떠났다. 이유는, 치매 극복이었다. 엄마 아빠도 아니고 할머니 때문에 퇴사한 손녀가 있을까 생각한 막례 할머니. 그녀 말대로 나역시 처음엔 의아했지만, 유달리 할머니와 친했고 할머니 손길에서 자랐던 시절이 있기 때문에 할머니와의 사이가 유별나다는 걸 알게 되자 유라pd가 대단하게 느껴졌다. 할머니의 높고 높은 사랑같은 건 아무래도 바쁜 현대인에겐 잊고 지낼 과거다. 나는 할머니 할아버지와 추억이 많지 않아서, 유라pd가 마냥 부럽기만 하다. 하지만 할머니 할아버지가 건강해서 나와 많은 시간을 보냈대더라도 나이 먹고 그들을 역으로 챙겨줄 만한, 큰 그릇이 될까 질문해보면 답은 쉽게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막례 할머니와 유라pd의 케미가 좋아서, 유튜브를 더 보게 된 이유도 있다. 그들을 가까이하면 나도 가족들과 사이좋게 지낼 수 있지 않을까, 하면서.
유튜브의 권위자 수잔도 막례 할머니 유튜브를 특별하게 생각한다. 유튜브 ceo가 알아보는 유튜버인 만큼 박막례 할머니는 특별하다. 그녀의 이야기는 세계를 뻗어나갔고, 비비씨에 실리기까지 했다. 하지만 의외로 국내에선 그런 기사들을 볼 수 없다. 생각보다 언급이 안 된다. 어떤 남자 아이돌의 콘서트, 어떤 연예인의 레드카펫, 어떤 정치인의 추락은 귀에 못이 박이도록 호들갑스럽게 떠들면서 박막례 할머니의 세계적인 행보는 쉽사리 기사로 써주질 않는다. 있다하더라도 몇개가 안 된다. 그녀의 뉴스는 쉽게 찾을 수 없고 한국의 관심은 박막례가 아니다. 그녀가 단순히 막내라고 막례란 이름을 갖고, 여자라고 공부를 못한 것처럼, 한국 사회는 그녀를 품기엔 아직 좁은 세계다. 그래서 박막례 할머니에겐 유튜브가 빼놓을 수 없는 루트다. 그녀를 알게 해 준 유튜브에게 감사하고, 그녀와 동시대에 살면서 여자의 인생이 이렇게 뒤바뀔 수 있는지, 용기를 주는 그녀의 책에 행복하다. 그녀의 용감한 두 번째 삶을 응원한다.
'책리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책리뷰] 심인광고 단편. 세상 끝에 내몰린 인간의 이야기, 재두루미. - 이승우 (0) | 2020.03.24 |
---|---|
[책리뷰] 좋은 작가가 되기 위해 5분만 투자하라! 5분 작가 - 마그레트 제라티 (0) | 2020.03.23 |
[책리뷰] 가장 전통적이고 무서운 구미호 동화책, 여우누이 - 이성실 (0) | 2020.03.20 |
[책리뷰] 인생은 원래 불합리한 걸 인정하라, 그런다면 인생의 해법이 보일 것이다. 인생따위 엿이나 먹어라 - 마루야마 겐지 (0) | 2020.03.19 |
[책리뷰] 달콤하지만 씁쓸하고 슬프지만 재밌는 이야기 맛집. 쇼코의 미소 - 최은영 (0) | 2020.03.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