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참 이성과의 데이트에 신경 쓰던 이십대 중반, 데이트와 함께 꼬여가는 인간관계도 고민하며 좌절하고 있을 때, 우연히 접한 책이었다. <지루한 남자와 밥 먹지 마라> 제목에 확 끌렸다. 지루한 남자와 밥먹지 말라니? 이성과 썸 탈때나 첫 데이트를 할 때도 빠지지 않는 건 ‘식사’다. 식사 예절은 어릴 때부터 교육 받았지만 지루한 남자를 분간하는 교육은 받아본 적 없었다. 근데 어떻게 지루한 남자를 알아볼 수 있지? 그러한 호기심에 책을 집었다.
물론, 여자여서 이 책에 끌린 게 사실이다. 좀더 근사한 남자와 밥 먹고 싶고, 세련된 식사를 하고 싶은 게 여자의 본능이니까. 더군다나 책은 여자의 시점으로 쓰여져 있다. 그래서 책에 쓰여진 대로 따져보면, 데이트하는 남자의 유형을 쉽게 파악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읽다 보니 이런 생각도 들었다. ‘지인과의 식사에서도 생각하던 공통된 내용인데?’ 비단 이성과의 식사 자리 뿐만 아니고 친구와의 식사도 떠올랐다. 알고 보니 모두와의 식사에서 지킬 규칙이기도 했다.
식탐은 인간의 기본 욕구이다. 누구든 밥을 먹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다. 기본적인 본능이기 때문에, 사람의 본성을 드러내게 한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사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방망이로 뒤통수를 맞은 듯한 충격에 빠졌다. 식사 예절로 상대의 속마음을 들여다보는, 깊은 지혜는 없었기 때문이다. 누군가 내 식사 방법을 보며 나를 파악했겠지? 생각하자 등골이 서늘하면서 어떤 점을 고쳐야 할지 고민이 됐다.
<지루한 남자와 밥먹지 마라>의 저자는 초반부터는 팩트 폭행을 날린다. 결정 장애로 남에게 메뉴를 고르게 하는, 우유부단한 식사 상대가 나오기 때문이다. ‘아무거나’ ‘뭘 먹을까’ 오리무중한 상태로 메뉴만 바라보는 사람들이 꽤 많다. 수동적인 태도가 상대를 답답하게 한다고 표현한다. 실제로 내 지인들도 내게 메뉴를 넘기는 편인데, 그때마다 느꼈던 짜증과 답답함이 책을 읽으면서 크게 와닿았다.
상대방의 취향을 살피려는 노력이 빠른 결단을 내리게 한다
무엇이든 상관 없으니 이거 맛있겠는데요? 라며 상대방의 마음을 떠본다
상대방이 망설이고 있으면 종업원을 불러 메뉴를 추천받고 상대방의 반응을 살핀다.
본문 24p
단골집에 데려가고 싶어 하는 사람도, 겉보기엔 호의를 베푼다고 생각할지언정 사실은 자기중심적인 태도이며 그러한 데이트 코스가 마냥 좋지는 않다고 한다. 단골 바에 갈 경우 사장과 아는 사이라서 개인적인 이야기를 할 경우가 있고 (일전에 많이 취하셨는데, 댁에 잘 들어가셨나요 같은) 그 경우 상대가 소외감을 느끼며 따분해질 수 있단 것이다.
나 역시 실제로 이런 경우가 있다. 자신의 아는 집에 가서 사장과 잡담을 늘여놓을 때 식사의 주인공이 내가 아니라 사장으로 전이된 느낌이 없지않다. 그때마다 ‘기분 탓이겠지’ 넘겼지만 이 책에선 그 점을 예민하게 꼬집어준다. 자기중심적인 사람은 달갑지 않은 호의를 베풀기 때문에 상대의 짜증을 키울 수 있다는 점이다.
자신이 편한 곳이 아니라 서로가 편안해질 수 있는 곳을 고르자.
단골집에서는 함께 간 사람에 대한 배려를 잊지 말자.
자신의 단골집에 갔다면 다음에는 상대방의 단골집에 갈 것.
몇 년 전부터 유행중인 ‘무한 리필’ 가게를 좋아하는 사람의 유형도 나온다. 싸고 푸짐한 음식을 좋아하는 사람일수록 대범한 사람에게 끌린다고 한다. 그들은 식욕이 왕성하고 먹성이 좋아서 무한 리필을 자주 가는데, 여행 중에도 자신이 아는 프랜차이즈 식당을 선택할 수 있단 것이다. 모험을 하지 않는 견실한 성격이라는 것이다. 게다가 싸고 맛있는 것을 찾는 사람일수록 현실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는 사람일 확률이 크다. ‘비싼 것일수록 맛있다’라고 일차원적으로 생각하는 삶은 매사에 돈을 기준으로 판단하려는 사람이니 그들에 비하면 전자는 ‘맛’과 ‘가격’이라는 두 개의 평가기준을 저울질하며 판단할 수 있어 균형 감각이 아주 뛰어나다.
내 주변엔 이 유형과 반대의 유형이 있어서, 책을 읽으면서 대입하고 생각해보았더니 맞는 말인 거 같아 가가대소했다. 책을 읽은 후, 모임에서 정해진 식당이나 지인이 선택한 메뉴를 보면서 그들을 예측하는 재미가 꽤 쏠쏠해졌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맺는 대인관계에서, ‘밥’은 절대적으로 빠질 수 없는 존재다. 만일 사람을 보는 눈을 기르고 싶다면, 이 책을 읽고 ‘식사’하는 모습을 지켜보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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