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리뷰

[책리뷰] 한국형 판타지, 술술 읽히는 즐거움. 아가미 - 구병모

잡풀 2020. 5. 18. 10:09

저자 구병모(소설가) 자음과모음 2011.03.21
저자 구병모(소설가) 위즈덤하우스 2018.03.30

 

 

개성이 넘치는 구병모 작가. 구병모 작품은 그냥 아묻따 읽는 편이다. 그 중 가장 좋아하는 작품은 <아가미>이다. 내가 읽은 아가미는 2011년에 자음과 모음에서 인쇄한 책이었다. 캐릭터성도 좋았고 표지도 예뻐서 일단 눈길이 갔다. <위저드 베이커리>로 감동 받은 구병모의 문체와 분위기가 좋아서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아가미>를 읽었다. 그런데 재미 들려서 몇 년에 한 번씩 꾸준히 읽는 책이 되었다. (왜 다시 위즈덤 하우스에서 나왔는지 명백히 이유를 알겠다. 일단 재밌으니까!)

 

구병모 작가에게 가장 끌렸던 점은, 그녀의 판타지가 생각보다 대중적이라는 것이다. <아가미>는 전 세계 아이들에게 사랑 받았던 인어공주를 연상케하는 캐릭터가 나오고, <위저드 베이커리>는 어른아이 없이 좋아했던 따끈따끈 베이커리를 연상케 한다. 그녀의 판타지는 누구나 꿈꿨었던, 그런 소재였다. 그저 여기에서만 그친다면 평범할 텐데 이야기가 정말 한국적이고, 너무도 현실적이다. 현실적인 판타지를 본 적 있는가? 주인공이 처한 배경과 앞으로의 얘깃거리가 너무도 현실적이어서 판타지 따윈 아무것도 아닌 듯 느껴진다. 그런 이질적인 분위기 속에서 적당한 균형을 맞춘다는 건 굉장한 일이다.

 

아가미에선 지지리도 못 사는 집에 함께 지내는, 병약한 노인과 손자 강하가 나온다. 강하와 할아버지는 우연히 저수지에 빠진 곤을 살리게 된다. 곤에겐 아가미가 존재하고, 갓 잡은 생선에서나 볼법한 반짝이는 비늘도 있다. 마음씨 착한 노인과 손자가 곤을 거둬서 키우게 된다. 그저 여리여리하고 별볼일 없어보이는 곤은, 물에만 들어가면 그저 물 만난 물고기다. 그의 존재를 숨기기 위해 강하는 곤에게 끊임없는 잔소리를 하게 된다. 우연히, 강하 곁을 떠났던 어머니가 갑자기 들이닥치면서 세 사람에게 갈등이 생긴다. 어머니를 애증 하는 강하와 자식을 못 알아 볼 만큼 약에 쩔은 어머니, 그리고 누구나 호기심을 품을 만큼 아름답고 신비한 곤. 작은 오해가 그들에게 폭풍을 가져온다.

 

<아가미>를 읽으면서 가장 뇌리에 박힌 건 곤의 생김새이지만 그보다 감명 깊었던 것은 곤과 강하의 관계성이다. 강하는 틈만 나면 무슨 새끼, 새끼, 할 만큼 입이 거칠고 험악하다. 불량해보이는 강하지만, 그런 그는 곤에겐 듬직한 형 노릇을 자처한다. 그런 강하를 보고 있자면 곤을 누구보다 아꼈을 것이다. 곤 역시 물과 하나가 되는 재주(?)가 있는데도 평범하게 자랐다는 것이다. 다채로운 캐릭터 속에서 눅눅한 줄거리를 보면 굉장히 한국형 판타지임이 틀림없다.

 

구병모의 책에선 주인공들이 결국 행복하게 잘 살았다거나, 행복하게 지냈었다는 과거 같은 건 없다. 그래서 처음엔 동화 같으면서도 결국 동화와 동 떨어진 이야기를 접하게 된다. 그런데도 허무하다거나 허탈하지 않다. 정말 있을 법한 이야기다 싶어 주위를 둘러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