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리뷰

[책리뷰] 묘하게 정감가고 유머러스한 사람간의 불화, 시트콤 - 배준

잡풀 2020. 4. 23. 11:44

저자 배준 자음과모음 2018년 09월 15일 한국 장편소설 정가 13000원

 

제1회 자음과모음 경장편소설상 수상작인 <시트콤>. 내가 자주 가는, 작가 지망생 커뮤니티에서 추천을 받아 읽기 시작했다. '손에서 놓을 수가 없어 원고를 온갖 곳에 들고 다니며 읽었다' 백민석 소설가의 화려한 소개문처럼 시트콤은 충분히 매력적이고 재미있었다. 제목 그대로, 시트콤을 보는 듯 했다.

 

<시트콤>의 가장 큰 장점은 술술 읽히는 책 중 하나란 것이다. 몇년 전 가네하라 히토미의 <뱀에게 피어싱>을 단숨에 읽고 경이로움에 찼던 기분을 비슷하게나마 느낄 수 있었다. 가네하라 히토미 책 역시 어떤이의 리뷰 때문에 읽게 되었는데 '술술 읽힌다'는 감탄에 꽂혀서 읽게 된 것이었다. 두 작품의 공통점은 놀랍게도 데뷔작이란 것이다.

 

<시트콤>은 이야기 초두부터 사람을 웃기게 한다. 어느 깜찍발랄한 학생 커플은 먼지가 쌓인 상담실에서 은밀한 애정행각을 벌인다. 생기 발랄한 교정에서 버려진 상담실은 출입의 흔적이 전혀 없고 그 곳에 있으면 다른 세계로 온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진도가 나가기도 전에 새로운 누군가때문에 학생들은 테이블 밑으로 숨는다. 몰래 들어온 이들은 선생들이었다. 에어컨 고장으로 찜통이 된 교무실을 냅두고 그들은 버려진 상담실로 와서 이런 저런 뒷담화를 한다. 그러다가 몰래 사귀는 선생들 커플이 애정행각을 벌이다가 새로운 침입자 때문에 또다시 테이블에 숨는다. 그들은 학생들을 발견하고 흠칫 놀라지만, 밖으로 나갈 수 없다. 학부모와 선생의 면담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대개 이런 식으로 이야기가 진행 되는데, 이는 마치 우리가 즐겨보던 시트콤을 떠올리게 한다. <거침없이 하이킥>이나 <논스톱>에서 보았던, 웃음을 유발하는 스토리 라인이다. 그래서 부담없이 이야기를 후루룩 읽을 수 있었다. 게다가 상당한 필력도 있어서 단순한 이야기처럼 보이기보단 실제로 어딘가에서 일어날 법한 에피소드를 엮은 느낌이다. 황당하면서도 현실적인 이야기를 잘 못 쓰는 경우 소위 말하는 '킬링타임용'이 되기 쉽다. 하지만 시트콤은 독자가 함께 고민할 만한 요소를 얹어주는, 적당한 무게도 있고 그 긴장을 쉽게 풀어버리는, 푸스스 웃게 만드는 이야기가 깔려있다.

 

최근에 나는 유머러스한 사람들이 좋아졌다. 최근이라고 해봐야 1년 반 정도가 흘렀지만. 재밌는 글과 재밌는 드라마가 끌린다. 유트브 역시 마찬가지다. 깔깔 웃을 수 있는 유튜버들을 구독한다. 센스 있는 사람들이 좋다. 퍽퍽한 현실에서 그나마 숨을 트이게 해주는 건 웃음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시트콤은 내게 참 고마운 소설이다.